내가 해온 것들을 생각해보면 올 한 해는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도 신기한 해였다.
왜 올해가 특별한 해였는지 설명하기 전에 과거의 나의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려고 한다.
2020년까지는 내가 어떠한 목표를 세운다기보다는 일단 인생에서는 정답 같은 정해진 루틴이 있고 그 루틴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거 같다.
중, 고등학교 어느 시기부터 정답 또는 정답에 가장 근접한 방법을 찾아서 배우고 그대로 하고 싶어 했다.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던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릴 때 하던 온라인 게임에서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다 보면 공략집을 보고 최고로 효율적인 루틴으로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 뒤쳐졌다. 짜증이 났다. 뒤쳐지는 게 기분이 나빴던 건지 정답을 뒤늦게 깨달은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더 짜증 나는 사실은 이것이 온라인게임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는 공부도 시험도 모든 것이 이런 식이 었다. 처음 시험 준비를 할 때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했었다. 누가 관련된 것에 대해 물어보면 내가 이해한 대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고, 이게 왜 존재하는지 어떤 이론이 뒷받침되는지 알면서 점점 재미를 느끼고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시험에서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 물론 내가 작은 것 하나하나를 완전히 세세하게 알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시험에서 나오는 문제는 어이없을 정도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 정말 웃긴 건 이해를 전혀 못해도 비슷한 기출문제만 하나만 봤어도 바로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괜찮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점수 잘 받는 많은 사람들이 하던 것처럼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이해하고, 기출문제만 풀면서 패턴을 파악해봤다. 엄청난 점수 향상이었다. 앞서 말했던 온라인 게임이랑 비슷하게 화가 났다. "또 나는 정답을 몰랐었네" 하고 말이다. 이렇게 나는 나 스스로가 내리는 결정을 점점 신뢰하지 못하게 됐던 것 같다. 그나마 얻은 점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수용하고 빠르게 흡수하고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야 정답을 알 수 있으니까. 나 혼자서는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이렇게 대학교에 갔다. 대학교는 졸업만 하면된다고 생각했던 이유에서였는지 정말 내 마음대로 살아 봤던 거 같다. 더 이상 안 놀아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재밌고 신나게 놀아보기도 했고,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공학 대회/해커톤에도 여러 번 나가고, 여러 동아리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랑도 만나고 메이킹도 하면서 정말 정말 행복하게 지냈다. 그 와중에 교환학생도 신청해서 독일도 다녀오고 지금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항공공학도 부전공으로 듣고 (비행기를 좋아했다) 3명밖에 없는 스타트업에 스스로 전화해서 찾아가서 일도 해봤다. 뭘 이것저것 많이 하긴 했는데 미래에 대해 설계하면서 하지는 않았다. 많은 자기 계발 서적에서 말하듯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그 생각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대학교 졸업까지 만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그 이후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나? 취직을 해야 하나? 이끌리는 대로 하기에는 너무 큰 결정이어서 정답을 찾고 싶었지만 당연히 정해진 정답은 없었다.
이렇게 정답에 집착을 하다보니 당연히 부작용이 있었다. 시험처럼 작은 것에도 정답이 있지만, 인생처럼 커다란 것에도 정답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든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장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정답을 정해놓으면, 정답 이외에는 오답이 된다. 내 논리에 갇힌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그건 실패한 인생이라는 뜻이 되는 거다. 무서웠다.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이 싫었다. 취업에 실패할 때마다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서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못했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비웃을것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소서는 어떠한 형식으로 써야 되고 면접 때 시선은 어떻게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고 스펙은 어떻게 보이게 만들어야 하고... 인터넷을 수없이 뒤지고, 학원까지 알아보면서 정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거의 1년간 취업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안되는 거 온전히 나에게 맡겨보았다.
당연히 처음에는 완전 망했다. 근데 이번에는 조금 더 나를 길게 믿어봤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자기소개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썼고, 면접 때도 그냥 질문을 듣고 생각나는 말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점점 좋은 결과가 나왔고 정답을 이용할 때보다 마음도 훨씬 후련했다. 이후 내 마음가짐과 태도는 점점 바뀌어갔다. 나 혼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판단에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한 게 처음에는 내 말이 부정당해도 시간이 지나고 결국엔 내가 예상하고 말한 게 맞은 경우도 맞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정답을 찾는 것에 대한 집착도 줄어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2021년 한 해는 정말 속시원한 해였다. 내 판단을 믿었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은 이제 내가 무엇을 판단하는데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한번 해야 된다라고 판단하면 몰두한 만큼의 집중력은 있었고 내가 시간을 쏟은 만큼 결과가 어찌 됐든 남는 것이 있었다. 어렸을 땐 한 번이라도 틀린다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을까. 그냥 상관없이 내 방식대로 뚝심 있게 했으면 온라인게임에서도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서 남들을 제칠 수 있었을까. 예전 같았으면 다시 왜 이제야 이걸 알았을까 하며 짜증을 냈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좋다. 2021년이 생각하면서 나를 다잡는 해였다면 2022년은 생각을 줄이고 나를 움직이는 해로 만들고 싶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성장할 부분은 더 많다. 다음 연말에 이 글을 보면서 올해는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고 싶다.
내 생각